[아트리움 모리]  Fableweave





 

“캔버스 안으로의 길과 바깥으로의 길”

유촌창작스튜디오 평론가 매칭 프로그램: 유지혜



러그 위에 펼쳐놓은 이젤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전을 앞두고 한창 작업 중인 그의 스튜디오에는 색채와 형상으로 꽉 찬 캔버스가 벽을 따라 펼쳐 있었고, 이젤 위에도 거의 끝난 것처럼 보이는 그림이 세워 있었다. 이젤은 의자 하나 더 놓을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은 러그 위에 펼쳐 있어서, 흰색 벽과 바닥에 둘러싸인 ㄴ자형 공간 속에서 조금 다른 영역에 대한 흐릿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했다. 마침 이젤 앞에 앉았을 때 바깥을 향한 투명한 창문 아래 세운 큰 그림에는, 빽빽하게 지붕이 붙어 있는 2층짜리 닮은 꼴 집의 창문이 빛과 어둠 속에서 안팎을 극단적으로 연결하는 통로처럼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발코니 너머 누군가의 거실 안 시시콜콜한 살림살이나 아치형 창문 너머 고풍스러운 액자와 카펫이 깔린 인테리어에서 어떤 소리-시끄러운 TV소리, 주방에서 요리하는 소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 혹은 적막한 침묵마저-와 냄새-클래식한 꽃병에 꽂아놓은 풀과 꽃 향기, 고상한 방향제에서 퍼져 나온 공기의 향, 음식 냄새와 아이들 살 냄새까지-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젤 옆 바닥에는 풀밭 위에서 푹식한 담요를 덮고 깊은 잠에 빠진 누군가의 몸이 직사각형의 긴 캔버스를 꽉 채운 채 놓여 있었고, 스튜디오의 공기를 차갑게 식히는 에어컨의 냉기가 저 그림 속의 정황에 닿을 만한 촉각적 단서로 작용했다.

   직립해 있는 상상의 존재들이 정면을 향해 함께 서 있는 그림에는 별다른 정황이 보이지 않지만, (아직 혹은 벌써) 초록이 스민 마른 잔디와 울창한 초록 산과 잎이 다 떨어진 갈색 나무와 얼어붙은 듯한 회색 하늘이 여러 계절을 하나의 화면에 오려 붙인 것처럼 수수께끼 같은 기시감을 가져다 줬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가, 스튜디오 창에서 떨어진 빛이 캔버스에 한시적인 얼룩을 남겨서 인가, 캔버스 안에 직조된 비현실적인 계절감을 알아차렸을 때, 이 그림에는 우화처럼 현실과 상상을 가로지르는 비선형적인 서사의 짜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 닿게 됐다. 그때쯤, 준비하고 있는 개인전 제목이 ‘Fableweave’라고 그가 말했다.


*

두어 달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대해 말했다. 그날 그날의 자화상 같은 존재로서 매일의 드로잉을 통해 기록해 놓은 이미지들에서 그의 그림은 출발한다. 일기 쓰는 것처럼 작업하는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사적인 것들이 캔버스 안에 자리잡게 하기 위해 기억과 상상을 넘나들며 “어떤 공간”에 대해 유독 몰입하고 있는 현재의 처지를 내게 말했다. 책으로 둘러싸인 개인적 공간, 평범한 일상의 장소들, 패턴 같은 유형을 보여주는 집과 무대의 외형, 이처럼 그의 그림 속 요소들은 어떤 공간을 특정하며 캐릭터들이 기억과 상상을 가로지르는 서사를 암시한다. 그래, 암시하듯, 그는 저 복잡한 화면 곳곳에 말 못할 속사정을 숨겨 놓듯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가져다 놓는다.

   러그 위 이젤에 펼쳐 있던 캔버스 안에는 녹아서 흘러내리는 자화상이 정면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땅과 하늘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공허한 장소에 판자 더미를 거처 삼아 앉아서, 여기, 캔버스 바깥으로 향하는 통로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녹아 내리는 캐릭터 앞에는 “Quite A Journey”라는 문구가 결합되어 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뭉쳐 있는 저 화면 속 캐릭터는, 그림 배경 속 구름과 그림 전면의 글자 사이에 끼어 있는 익명의 공간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저 그림이 바깥으로 향하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예측을 가늠하게 했다. 이를테면, 초현실주의자들의 회화적 이미지를 경유해, 무언가 녹아 내리는 형상의 유예 상태, 시각적인 것과 비시각적인 것 사이의 틈새에서 이미지를 규정해야 하는 부조리한 과업을, (지금은) 스튜디오 이젤 위에 올려 있는 한시적인 환경에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

유지혜의 개인전 《Fableweave》(2025)에는, 아마도 내가 그의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그림들을 보면서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회화 바깥의 환경이 꾸려질 것이다.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조셀릿(David Joselit)의 글 “Painting Beside Itself”(2009)에서 인용했다. 그는 회화가 자신을 둘러싼 바깥 환경과 관계 맺어 온 일련의 실천에 주목해, 동시대의 회화가 더 이상 독립된 매체가 아닌 여러 이행의 절차들 속에서 스스로 자기 옆(beside)에 자리하는 회화의 경로에 대해 언급했다. 특히 유타 쾨터(Jutta Koether)의 급진적인 실천에 비평적 공감을 보이며, 그는 쾨터의 회화가 강조하는 회화의 ‘네트워크’ 및 ‘이행성(transitivity)’에 접근하면서, 그의 회화에서 “캔버스 내부의 통로와 캔버스 외부의 통로를 정지/유예 상태로 유지하는 능력(its capacity to hold in suspension the passages internal to a canvas, and those external to it)“을 포착했다.

   유지혜는 “일기처럼” 자신이 겪은 외부의 사건과 내면의 심리 사이에서 회화 내부로 향하는 통로를 찾아내려 했다면, 이 그림 속 우화가 “현실을 매개하며” 더 큰 서사적 관계를 직조할 수 있도록 캔버스 바깥으로 향하는 통로를 모색하는 중일 테다. 그가 《Fableweave》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드로잉과 회화 사이에서 지속해 온 입체 피겨 작업을 하나의 회화적 이행의 절차 안에서 가늠해 보려 했는지, 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확장시킬 전시 형식에 대한 계획을 말했다.

   우화, 그것의 알레고리처럼, 유지혜는 회화 속 선과 형태와 색채 등 일련의 조형적 요소들을 전시 형식의 네트워크로 이행할 수 있도록, 벽지와 선반과 조명 등 흰 벽과 바닥의 중립성에서 벗어날 새로운 축을 설계하고자 했다. 이로써 그는, 일러스트적인 이미지에 고정될 것이 아니라, 그의 회화는 우화적 서사의 관계를 반복하면서, 캔버스 안으로 향하는 조형적 통로와 캔버스 바깥으로 향하는 사회적 관계의 통로를 왕복하면서, 일종의 지속적이면서 한시적인 유예의 순간에 몰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9월이면, 그가 캔버스 바깥의 경로를 탐색하며 풀어놓은 전시 형식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의 완성이 아니라, 그 시도들을 말이다. 내가 그의 스튜디오에서 흐릿하게 상상했던 그 시도들이, 또 다른 시공간에서 상영(上映)될 것이다.



 

안소연

미술비평가

Exhibition Info


Artist

유지혜


Date

2025.09.06~ 09.20


전시실

아트리움 모리 본관 전시실

Current  현재 전시



Artrium MORI

사업자번호 525-85-01558  |  주소 경북 성주군 월항면 주산로 450
TEL 054. 933.5573  
|  FAX 054. 933.8317
E-mail artriummori@naver.com

ⓒ 2022. ARTRIUMMORI.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