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리움 모리] 잠 못 드는 이들의 나이테
드러나는 시간, 마주하는 몸
임도에게 사물은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관계적 대상이다. 그것은 작가가 자신의 실존을 묻는 과정에서 그 물음에 동참했거나 혹은 스스로 세계와 얽힌 이야기를 내포하는 존재다. 임도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에, 사물이 건네는 응답을 듣는다. 과거의 기억이나 지금의 상황, 그리고 작가로서의 존재를 묻는 순간에서도 사물은 세상과의 관계망이자 고리로서 자신의 응답을 전했다. 그 이야기를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 동안 수행하듯 작업을 이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작업 방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삶' 그 자체와 닮은 재료의 등장이다. 그것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스스로의 몸에 풍화와 인고의 시간을 퇴적해 온 ‘나무’이다.
작가는 버려진 나뭇가지를 깎고 다듬어 재료 본래 모습을 드러내며 조형한다. 결마다 고유한 빛을 드러낸 나무가 그 자체의 단단함과 생명성을 발현한다. 나무는 특정한 장소에서 우연히 그에게 발견되었지만, 무수한 환경을 통과하여 작가와 마주했다. 마치 한 개인이 자기만의 서사를 지니고 있듯,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나무는 각기 다른 역사에 따라 굴곡진 몸과 두께, 나이테를 형성한다. 작가는 켜켜이 쌓여 거칠고 어두워진 표면을 하나씩 벗겨내고 다듬으며 대상과 연결된다. 굽이치는 시간을 감내했던 나무는 자신이 품던 시간을 매끄러운 속살을 통해 보여주고 그 형상이 비로소 갖춰질 때 어느새 작가의 자리가 녹아들어 함께 공존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물은 배경 속으로 물러나 있다가, 쓸모의 도구가 될 때 인식된다. 유용함의 원칙에서는 사물의 고유한 속성과 이야기가 쉽게 은폐되는 것이다. 그러나 임도는 용도가 아닌 사물이 가진 근원적인 내재성을 목격한다. 이를 이끌어내는 것은 그것이 과연 어떤 세계 안에 놓여있고, 다른 존재와 맺는 관계는 어떠하며 무엇이 되어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이는 작가가 대상에게 자신 스스로를 투영하며 찾아가는 물음이기도 하다.
가령, 찢어지고 갈라진 사이를 회복하는 실과 뜨개질은 작가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뜨개질은, 작업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동시에 유연하고 부드러운 실이 지닌 질기고 강한 잠재성을 실험해낼 수 있는 매체였다. 이후 낚싯줄과 바늘로 옮겨간 소재 또한 두드러지지 않은 채 단순히 도구로서만 취급되어 온 사물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물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것이 겪어낸 역사와 이야기를 보이게 할 때, 그 자체의 특수한 아름다움이 밝혀지고 동시에 평범하고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어왔던 허황된 위계를 인식할 수 있다.
이러한 시선은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져 사물이 지닌 다양한 존재와의 생동적이고 열린 관계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사물이든 인간이든, 자신 안에 내재된 다양한 성질과 특수성은 외부 환경과의 그물망 속에서 이루어진다. 존재의 이야기는 결국 탈존脫存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이런 관점에서 작가는 나무에게 인간, 특히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내어 자신과 대상이 세계 내의 존재로서 겪는 공속적인 지평을 밝혀낸다. 나무의 결을 찾아낼수록 그것의 살아온 시간을 목도하고, 이내 작가 자신으로 치환된 나무는 작가의 삶과 일상을 소환한다.
두 가지의 나무가 서로 기대어 사람(人)의 형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人人_2025년 5월 13일 38분 9초의 통화>는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각자만의 세월을 살아온 나무는 옹이와 결, 상처의 흔적 등 같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이것이 모여 사람의 모습을 이루면서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인간 사회도 이처럼 저마다 다른 인간이 서로 기대어 살아간다. 작가는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 작가와의 통화 이후, 인간 삶의 근원적인 양상을 생각하게 되고 이러한 형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갈피를 ( ) 잡다>는 레지던시 기간 동안 공회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외부 환경은 선풍기,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버티고 서 있는 나무는 작가를 빗댄 것으로 자신 바깥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상황을 암시한다.
또 다른 작업 <시절 인연>은 작가가 레지던시 생활을 통해 겪는 경험의 변화를 담는다. 선적 요소를 지닌 긴 나무가 구멍이 난 두 개의 나무 덩이를 통과하는데, 이는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작가의 모습과 같다. ‘선’과 ‘덩이’로 이루어진 그의 작업에서 ‘덩이’는 응고된 개체성, ‘선’은 서로를 붙드는 사회성의 본질을 표상한다. 이는 덩이의 형태와 같이 집적된 자아로서 머무는 개체가 타인과 환경을 만나 다시 선으로써 나아감을 의미한다. 나무의 결을 회복하면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은 자연스럽게 사회 관계망의 모습을 갖춘다.
이번 작업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마치 거울을 통해 비추듯 작가가 나무로 투영되고 나무의 현상은 다시 작가로 비쳐지고 있음이 발견된다. 나무는 아래에서 위로, 안에서 바깥으로 선을 뻗어내며 자신의 시간을 건설한다. 겹겹이 쌓인 나이테는 매일 다른 일상을 감싸고 견디고 품어내었기에 제각기의 모양을 가진다. 이러한 나무는, 새로운 역사에서 또 다른 굴곡점들을 찾아갈 것이다. 이처럼 임도의 덩이는 새로운 선들의 교차 속에 일시적으로 머무르며, 선을 따라 다시 나아간다. 임도는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자신의 선을 편집하고 배치해본다. <다시 쓴 시간 선>에서 나무의 몸체를 자르고 재배치하여 나이테를 뒤섞어보는가 하면, <열다섯의 덩이와 하나의 선>에는 1개의 통나무에서 나온 15개의 덩이를 하나의 선으로 연상할 수 있도록 놓는다. 이는 나무처럼 작업의 분기점들이 연속성을 가지고 선으로서 이어지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임도는 존재의 본원적인 속성에 대한 탐구에서 ‘무엇으로부터 와서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존재를 앞지르는 생성의 문제로 관심을 넓힌다. 어떤 대상의 근원을 밝히는 것은 그것을 둘러싼 외부와의 조응 과정을 살피는 일과 같다. 자연의 풍화를 견뎌 온 나무도 작가의 손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것처럼, 작가가 마주하는 환경과 사람 그리고 재료도 작가의 존재를 분화시키는 생성적 사건(Ereignis)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앞으로도 그런 사건이 새로운 감각과 인식을 촉발시키는 산물이 되어 떠오를 것을 예비하고 있다.
최소현
Exhibition Info
Artist
임도
Date
2025.09.27~ 10.12
전시실
아트리움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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