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전시_아틀리에 샘]  Particles - 별, 고을





 

집이라는 우주, 별이 된 사람들

 

인류의 서사에서 영웅 신화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혼란과 불안의 시대가 도래할 때마다, 인간은 자신들을 구원할 영웅을 갈망하며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 속 영웅들은 신과 인간의 경계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고, 현대의 슈퍼 히어로들은 대공황과 세계대전이라는 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이처럼 영웅의 이야기는 당대의 열망과 불안을 투영하는 거울이자,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집단적 염원의 발현이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서사의 이면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존재한다. 영웅들이 악당과 맞서 싸우는 동안에도,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어김없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신들이 하늘에서 전쟁을 벌일지라도 땅의 농부는 묵묵히 씨앗을ㅇ 심었을 것이고, 어벤져스가 지구를 위해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하고 있을 때도 학생들은 학교에 가고,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하기 바쁘다. 이렇게 거대한 서사와 개인의 미시적 삶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한다. 구영웅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쳐나간다.

흔히 '영웅'이라 하면 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존재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초인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가 구영웅에게 '영웅(英雄)'이라는 이름은 그러한 부담스러운 책무를 가진 이가 아닌, 예술적 탐구의 대상이었다. 그는 신화 속 영웅을 재현하는 대신, 오히려 우리 안의 평범함, 즉 거대 서사와 일상 사이의 '틈'에 주목했다. 그리고 바로 그 틈에서, 특별한 힘이 없어도 우리 각자가 자기 삶이라는 서사의 온전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발견의 배경에는, 작가 자신이 겪었던 구체적인 현실 경험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익숙한 도시의 집을 떠나 성주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집의 건축 과정까지 관여하면서 작가는 '집'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에게 집은 더 이상 물리적 공간이나 자산이 아니라, 한 개인의 기억과 꿈, 삶의 서사가 응축된 '작은 우주(소우주)'였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마치 운명처럼 성주의 밤하늘에서 마주한 별빛과 만나 비로소 그의 작품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피어났다.

성주에서 작가가 발견한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별의 불변성이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저 하늘의 별들은 늘 그 자리에서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빛을 발한다. 이는 거대한 영웅담이 펼쳐져도 멈추지 않는 우리 일상의 모습과 정확히 조응한다. 별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어도 묵묵히 존재하는 가장 근원적인 현실의 표상인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과 통찰은 이번 전시 <별, 고을>에서 공간적 구조로 완성된다. 수많은 작은 캔버스들이 별처럼 모여 거대한 하늘을 이루고, 그 아래에는 집 모양의 캔버스들이 고을처럼 자리한다. 그리고 각각의 집(캔버스) 역시 그 자체로 밤하늘을 품고 땅을 비추며 빛나는 별을 간직하고 있다. 이 풍경 속에서 관객은 개개의 삶(집)이 모여 하나의 우주(하늘)를 이루고, 그 안의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길을 비추는 별이 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작품의 형식은 이러한 사유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작가는 집 모양의 캔버스 위에 다양한 서사의 상징들을 매끈하게 빛나는 판으로 화면 위에 중첩시켰다. 여기에는 신화나 역사 같은 거대한 서사는 물론, 우리에게 친숙한 설화, 우화, 심지어 만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이미지만 보고도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의 기호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는 밤하늘의 별들이 은은하게 빛난다. 이를 통해 작품은 서사의 위계를 허물어 낸다. 신화와 만화, 역사와 우화가 동등한 자격으로 하나의 화면 위에 공존하면서, 작가는 어떤 이야기가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모든 사람의 삶 자체가 소중한 하나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 앞에 선 관객은 반짝이는 서사의 기호들과 함께 그 매끈한 표면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보게 된다. 작품 배경의 은은한 빛과 반사면에 맺힌 관객의 얼굴, 그리고 관객을 비추는 현실의 조명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뒤섞이는 것이다. 이 순간 관객은 외부의 서사를 수동적으로 관찰하는 자에서, 이제는 별빛 아래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작품의 능동적 주체로 전환된다. 결국 그의 작품은 관객 각자가 스스로를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 발견하게 만드는 하나의 거울이자 무대인 셈이다. 

구영웅 작가는 '영웅'의 무게를 우리 각자의 '이야기'가 지닌 고유한 가치로 치환한다. 그가 정의하는 주인공은 세상을 구하는 초인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별빛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다. 신화 속 거대한 서사나 도시의 빽빽함, 집값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이제 당신은 어떤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되고, 어떤 이야기로 집을 채우겠는가?




 정연진 (독립 큐레이터)

Exhibition Info


Artist

구영웅


Date

2025.09.17~ 10.12


전시실

아틀리에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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