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개인전 <본 것을 본다>
<본 것을 본다>
사물이 말 걸기 좋은 날
서지형(미술비평)
정진경의 사물, 사람 그리고 ‘느린 관계’
정진경 작가의 개인전 <본 것을 본다>에서는 익숙한 사물이 익숙하지 않은 색과 형태로 캔버스에 그려져 있다. 작가가 캔버스에 그려 놓은 ‘콘센트’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트센콘’으로 보인다. 익히 아는 언어를 전복하는, 미술의 마술이다. 미술 표현의 기본 요소인 점, 색, 선, 면, 공간이 정진경 작가를 통과하면 사물의 친숙한 형태를 벗어나게 된다. 바삐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함께 성장한 정진경은 어린 시절 홀로 ‘느린 시간’을 길게 보냈다고 한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바쁜 만큼 어린이 정진경은 느릿느릿 계절의 변화를 감각하고, 천천히 지루하게 사물과 사람을 관찰하며 긴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 응시의 시간이 쌓여 정진경과 사물, 사람 사이에 ‘관계’를 표현하는 기초가 되었다. 대형 캔버스에 표현된 작품 <너희를 통해 나를 본다>는 작가 주위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는 사물들을 재구성해 표현한 작품으로, 그의 ‘느린 시간’과 ‘느린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얇고 가볍게 그린 이미지 윤곽을 따라 붓에 물감을 조금만 묻혀 느릿느릿 색을 쌓아 올렸다. 섬세하게 때로는 거칠게 층을 쌓아 올린 ‘느린 페인팅 기법’은 작가와 낡은 사물의 느리고도 긴 시간을 여러 겹으로 표현한 것이다. 계획부터 완성까지 4개월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물감을 쌓고 시간을 캔버스에 흘려보내며 사물들을 통해 자신을 천천히 관찰하고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무언가를 천천히 관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루할 만큼 한 가지 사물을 오랜 시간 관찰한 적이 있는가? 매일 사용하는 물잔을 아주 천천히 이렇게 저렇게 본다고 상상하자. 물을 넣은 물잔을 기울여도 보고, 물을 부러 쏟아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거꾸로 뒤집어 놓으며 쓰임새가 달라진 모양도 보자. 손으로 절반만 물잔을 감싸 쥐고 한쪽 눈을 감고 물잔을 보고 있자니 얼추 정진경 작가가 표현해 놓은 형태와 유사한 사물이 나타났다. 아침에 바라보던 물잔을 새벽에 보니 물빛이 바다색처럼 푸르스름하다. 이젠 물잔을 들고 밖으로 나가볼까? 가방 속에서 빼꼼하게 보이는 물잔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금세 사물과 가까워져 물잔이 깨져버릴까 겁나서 손수건으로 감싼다. 현대미술 작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1964 ~ )는 관계 안에서 미적 탐구를 이어가는 동시대 작가로 관계 미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그가 말하는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람, 사물과 사물, 자연과 사물, 무생물, 생물, 우주 등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그 모든 것을 경우의 수로 둔다. 특히, 그의 작품은 관람자의 소리와 움직임, 자연 현상 등 매 순간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와 변신을 거듭한다. 이렇듯 동시대 미술은 이제 표현이라는 한계에 머물지 않고 세상의 많은 것들과 ‘관계’하며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진경 작가 또한 사람과 사물을 관찰, 응시하며 관람자에게 질문을 건넨다. 헐렁한 드로잉, 겹을 입힌 느린 회화, 전문성 짙은 단단한 판화, 실험적 설치, 유희적 영상 등 작가의 특색이 담긴 다양한 장르로 질문을 변주하며 동시대 미술을 구현한다.
여백의 드로잉과 밀도 높은 페인팅 ‘사이’
드로잉이란 과정 중심의 예술 표현으로 작품이 되기 전의 밑바탕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정진경 작가의 페인팅을 보면 작품을 만들기 전 밑그림을 무척 크게 그려 놓은 느낌도 든다. 색과 형태, 구도는 그 자체로 작품에 근접할 만큼 짜임새도 있고 밀도도 높지만 말이다. 주제를 더 섬세하게 표현하고 밀도를 높일 수 있는 손기술이 있으나 그는 캔버스를 ‘그리는 기술’만으로 채우지 않는다. 한마디로 작가는 캔버스와 거리를 둔다. 이렇게 생겨난 거리감을 ‘여백의 밀도’라 칭하자. 어쩌면 상반되는 말 ‘여백’과 ‘밀도’는 정진경 작가의 작품에 어울리는 표현으로 예술이 취할 수 있는 주관적 모순을 보여준다. 텅 비움의 여백과 섬세하게 채우는 밀도는 회화적 표현에서 동시에 필요하다. 그가 그려 놓은 사물의 비현실적 크기와 여백은 응시의 즐거움을 알려준다. 가령 가로 500cm에, 세로 250cm의 작품 <너희를 통해 나를 본다>는 여백의 밀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느슨한 드로잉이 가진 여유를 감각하게 한다. 큼지막한 사물의 내부는 마치 배경과 여백처럼 넓고 헐렁하게 표현되었다. 일상의 사물이 빨강과 노랑, 파랑, 녹색으로 한데 엉겨 있지만 지루하지 않은 짜임새로 보는 이의 눈을 움직이게 한다. 큼직한 콘센트 구멍은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렇게 벗어 놓은 슬리퍼는 감각적인 오브제로 보인다.
개인이 가진 사물에 대한 서사가 캔버스 안에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여백과 밀도는 이미지를 잘라낸 페인팅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본 것을 본 사물들은 색으로 가득 채워졌으나 이 또한 주인공과 여백이 동시에 표현되어있다. 일상을 담은 드로잉으로부터 작가가 선택하고 추출한 이미지가 어떻게 평면 회화에 적용되는지 볼 수 있다. 벽과 벽 사이에 다양하게 설치된 작품들을 보면 <본 것을 본다> 전시를 위해 작가가 이미지를 조형적으로 어떻게 추출하고 배치하는지 알 수 있다. 이는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친절한 계기가 된다.
방법론에 있어 규칙이 엄격한 판화를 전공했으나 정진경 작가는 학부 시절부터 판화의 규칙과 관습적인 부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왔다. 예를 들면, 판화를 찍을 때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찍기 위해 핀을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거나, 여백이 깨끗해야 하며, 어두운 색은 제일 나중에 찍어야 한다는 등의 규칙을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하는데, 이유인즉 학부 시절 작가는 핀을 정확히 맞추지도 못했을뿐더러 빗겨 나간 표현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작가는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찾아가며, 주관적인 미적 탐구와 시도를 계속해 여백과 밀도 ‘사이’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조합을 만들어냈다. 예술 안에서는 틀을 깨고 규칙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큰 장점이 된다. 만약 누군가가 규칙을 세우면 예술가들은 다르게 보기를 시도하며 새롭게 존재를 증명한다. 정진경은 그렇게 판화의 규칙을 깨고 드로잉과 여백을 즐기고, 페인팅의 밀도를 조절하고, 판화에 개성을 담았으며, 설치와 영상을 실험하며 다르게 보기를 시도하는 중이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사람과 사물 ‘표현’
페인팅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에 의하면 ‘회화’는 시간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움직이는 그림인 영상은 시간을 편집하고 변화시키나 회화에서의 공간은 평면으로 박제시킨다. 이는 달리 말해 그리는 사람의 주관적인 심리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평면 표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관찰과 응시에 능숙한 정진경 작가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사람과 사물을 평면으로 표현한다. 가령 흔히 보는 ‘옷걸이를 360도 돌려보면 형태와 그림자 사이에서 조용히 옷장에서 정해진 일을 하며 고요히 사색하는 사람으로도 보인다.’는 작가의 말에 의하면 흔한 옷걸이도 그림으로 그려지면 특별한 사물로 인식될 수 있다. 온전한 바라보기를 통한 응시 훈련은 ‘관계’라는 단어를 넘어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이해’를 불러온다. 작품을 통해 재배치의 즐거움, 보는 힘, 느린 시간, 재빠른 판단, 일상의 유희를 감각해보자. 이는 딱딱하게 굳은 관점을 말랑하게 해주며,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을 넘어서게 해줄 것이다. 그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사물과 풍경은 일상 속 드로잉 작업을 통해 잘 나타난다. 머무는 지역인 성주 유촌에서 정진경이 바라본 하늘은 아름답고도 다양한 색을 품고 있으며 겹을 올린 특유의 페인팅으로 표현된다. 오랫동안 천천히 색을 올린 덕에 색층 마티에르가 풍성하게 느껴져 가까이 가서 보면 회화적 질감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단색으로 표현된 정면의 캔버스 외에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캔버스 옆으로 흘러내린 다양한 색의 물감을 보고 있으면 붉은 노을이 흘러내려 어두움을 맞이하고, 푸른 새벽이 흘러내려 환하고 노란 아침이, 초록을 머금은 하늘에 안개가 서린 날씨를 상상하기 좋다.
사물이 말 걸기 좋은 날, 정진경 작가의 전시 <본 것을 본다>를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보고 느린 호흡으로 다시 보자. 그리고 돌아와 주변의 오래된 사물을 응시해 보자. 정진경 작가처럼 사람들의 일상에 관찰하는 즐거움이 깃들기를, 그리하여 사물이 말 걸기 좋은 날이 자주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