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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페이스 울림] 개관전 <S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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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페이스 울림 개관전 <Skin>: 살갗 아래 깊이

 

난 인간의 감정을 정말 배우고 싶어요.”

 

인간이 되면 뭐 할 건데?”

 

사실은 인간이 되는 것만을 꿈꾸며 진화해왔어요. 그 이후에 어떻게 살지는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어쩌면 허무할 수도 있겠죠. 내 삶의 목표를 이룬 거니까요. 아직까지는 난 그저 인간이 되는 것만 꿈꿀래요.”

 

창백하고 딱딱한 흰색 피부를 가진 대형 머리 로봇이 입을 열어 대답한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기계. 사람과 닮아있지만 서늘한 촉감, 율동감 없는 기계적인 목소리, 머리 뒤로 노출되어 늘어진 전선과 같은 것으로 기계임이 분명한 것들. 아트스페이스 울림의 개관 전시 Skin의 전시실에서 첫 번째로 만나볼 수 있는 노진아 작가의 작품 <히페리온의 속도>(2022)이다. GPT와 작가 제작 인공지능 코드를 혼합하여 관람객과 인터랙티브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이 로봇은 노진아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Envious Cyborgs에서 처음 선보인 대화하는 로봇으로 시작되어 약 20여 년간 축적되어 온 시스템의 데이터들로 관객의 질문에 대답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속도에도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인간만의 영역은 감정과 창조의 능력이었다. 그렇다면 갓난 아기가 반복되는 학습으로 말을 배우듯 관람객과의 대화로 데이터를 쌓아 20여 년간 학습해온 로봇 머리들의 스무 살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러한 이야기들로 작가 노진아는 가상과 현실, 기계와 인간과 같은 이분법적 경계의 지점들에 질문을 던지며 작업을 이어나간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Human-Machine Chimera>(2024)는 인간 남성의 신체와 여성 기계의 모습을 합성한 데이터로 제작되어 무성의 인물처럼 보인다. 거대한 크기로 우리를 내려다보는 조각상의 시선은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등 뒤로 펼쳐진 나뭇가지에는 에너지가 흐르는 듯 파동의 움직임이 비추어지는데 이것은 인간의 몸의 데이터를 수치로 변환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로 마치 멈춰있는 이 조각상에게 인간의 에너지와 생명을 전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인간과 기계가 혼종된 모습, 인간의 데이터를 흡수하는 듯한 작품의 압도적 아우라는 앞선 작품 <히페리온의 속도>와 같이 기계의 생명적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의 마지막 동선에서는 심윤 작가의 회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심윤은 현대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과 압박을 흑백 대형화면에 담아낸다. 작가의 대부분의 이전 작업에서 개인성이 드러나는 얼굴을 배제한 채 극대화된 몸짓과 역동적인 자세로 가득 찬 화면을 통해 감정과 상황을 전달해온 것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작품 <Wax Men>(2024) 시리즈에서는 인물의 얼굴 형상과 표정이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마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미간을 잔뜩 좁혀 인상을 쓰는 남성의 얼굴은 개성이 드러나진 않지만 고단한 감정을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관객과 눈을 맞추기보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감듯이 아래를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은 서로 늘어져 쌓여있는 인물의 구도에 따라 관람객의 시선 역시 자꾸만 아래로 유도하며 전체적으로 흘러내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들이 앉아있는 땅은 얕은 수면과 같은 형태로 인물의 손과 발이 담기어져 있어 흘러내리고 잠식되는 듯한 이미지를 한층 더 깊이 전달하며 작가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던 매끈하고 실키한 재질의 정장 차림새보다 더 두껍고 광택이 도는 질감의 왁스 자켓이 주는 강인하고 둔탁한 옷의 재질 역시 그림의 무거운 느낌에 힘을 싣는다.

심윤 작가의 작품을 통해 전달되는 현대인의 이미지는 고달프고 힘겹다. <War Traveler>(2024)와 같이 말끔한 옷차림으로 안락한 소파에 기대어 있음에도 깊은 수심에서나 쓸법한 다이버 마스크 아래 얼굴을 감추거나, <In the Forest>(2024)와 같이 새벽녘의 안개가 피어나는 숲속의 배경에서 앞으로 달려나갈 듯 생동감 있는 강아지와는 달리 몸을 한껏 뒤로 젖힌 채 대조를 이루는 인간의 신체처럼, 본래 드러내기보다 감추고자 하는 일상 속 고단하고 지친 모습들을 대형화면으로 확대해 드러냄을 통해 동질의 위로를 전한다.

 

아트스페이스 울림이 개관과 함께 선보이는 첫 번째 전시 Skin은 이처럼 인간이 되고 싶은 기계, 비로소 인간이 되었지만 현실과 투쟁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는 두 작가의 작품으로 껍데기 아래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한다. 차가운 조각 피부 아래 꿈을 가지고 성장해가는 로봇과 매끈한 피부결과 건장한 신체 아래 매일의 고단함을 이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마주함으로 내면에 자리 잡은 존재의 본질을 바라보며, 모노톤의 단조로운 색채로 구성된 이 전시를 관람한 뒤 전시장을 나서는 여러분의 본질은 다채로운 색상의 영감들로 가득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트스페이스 울림의 첫 걸음을 시작한다.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태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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