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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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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통해 관객이 자신과 대면하고 사유시간 가졌으면…”
물을 재료로 퍼포먼스처럼 작업
1차 과정은 캔버스, 장지 등 바탕에 도포
2차는 물 분사 도포화면 지우기
파괴자·포용자 양면서 균형 병치
화판 세우고 돌리며 함께 움직여
관람객에 간접적 예술 경험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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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애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울림 전시장 전경. 아트스페이스 울림 제공

 

 

물(Water·水)의 덕성을 꼽으라면 셀 수 없지만, 대체적으로 3~4 가지로 압축된다. 어떤 환경에도 저항하지 않고 유연하게 젖어드는 적응력,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순리, 상황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단단한 심지,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현재에 집중하는 태도 등이다.

 

물에 대한 찬사는 동서양을 초월한다. 인문학에서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물을 의미 있게 해석했다. 미술 분야에서도 물은 탐구의 대상이었다. 물의 유동성, 상징성, 철학적 의미, 자연 현상으로서 물의 가치는 미술 작가들에게 매력 포인트로 다가왔다. 서양미술사에서 물을 개념적으로 바라본 예술가들이 있었다. 인상주의의 대표화가였던 19세기의 프랑스의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평생 자신의 연못을 그리며, 물 위의 빛 반사와 흐름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시각적 인식과 감성의 교차점을 탐구했다. 21세기 영국의 세계적인 작가인 아니시 카푸어(Anish Kapoor)도 거울처럼 반사되는 물을 통해 깊이를 상징화했다. 동양에서 물을 조형적이자 철학적인 요소로 탐구한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다.

 

경북 성주에 위치한 아트스페이스 울림에서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는 송창애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물로서 물을 그린다”고 표현할 정도로 ‘물’은 그의 작업을 지탱한다. 그에게 물은 개념적인 기반이자, 작업의 재료이자, 작업의 방식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특히 작업 과정은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강렬하다. 작업은 푸른색채의 분채가루를 장지나 캔버스 등의 바탕체에 도포하는 1차 과정과, 분사기로 물을 분사하며 도포한 화면을 지워가는 2차 과정으로 진행된다.

 

작업의 관건은 “강렬하게 뿜어내는 분사기의 물을 어떻게 제어 하느냐”다. 세찬 물살을 이용해 표면을 지우는 방식으로 형상을 쌓아가는 것은 노련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마치 무의식의 세계에서 직관의 안내에 따라 퍼포먼스를 진행하듯 물과의 사투를 벌인다. 그 결과 푸른 화면 위에 흰 형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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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애 작가. 아트스페이스 울림 제공


 

송창애는 자신의 작업을 ‘이수관지(以水觀之)’로 개념화했다. 세상을 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세계관이다. “존재와 세계는 유동적이고 가변적인데, 이는 물의 속성과 닮아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출발은 “‘물(物)’의 입장이 아닌 ‘도(道)’의 입장에서 사물이나 세계를 바라본다”라고 설파한 노자의 ‘이도관지(以道觀之)’였다.

 

‘이도관지’는 숙명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미국 오리건대학교에서 회화와 드로잉 석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홍익대에서 동양화 박사학위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개념이었다. 동양인으로서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도관지’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관념적인 ‘도(道)’ 대신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자 했고, 그렇게 잉태된 것이 ‘이수관지’였다.

 

“제게 도(道)는 너무 추상적이고, 너무 멀고, 너무 관념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죠. ‘물과 어떻게 호흡과 파동을 일치하느냐?’라고. 그랬을 때 존재와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른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것과 가장 닮은 대상을 찾았을 때 물을 떠올렸어요.”

 

그에게 세상은 양면적이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물에도 오롯이 적용된다. 그는 물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파괴자와 모든 존재를 품어주는 포용자라는 양면성을 발견한다. 이런 인식 아래 물의 양면성을 화면에 균형감 있게 병치한다.

 

그의 작업에서 분사되는 물과의 사투인 작업과정은 전투적이지만, 작업의 결과는 지극히 고요하며 명상적이다. 이는 그의 양가적인 태도에 대한 서술이다. 이런 태도는 작업 과정에서도 견지된다. 물을 제어하기 위한 치열함과 치열함 끝에 얻는 조율의 기운은 서로 상반돼 있다. 물의 속성을 닮은 그의 작업은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의 균형 위에 있는 것이다.

 

“물은 저의 작업에서 단순한 물성 이상의 개념으로 작용합니다. 작업을 지탱하는 철학적 기반인 것이죠.”

 

‘이수관지’라는 송창애만의 예술 철학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인생에서 위기일 때 태동했다. 예술적인 회의와 현실의 무력감이 의식을 잠식하던 시기,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침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현실의 부조리함, 무기력함, 그리고 예술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무용성까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어요.”

 

그때 어느 순간, 눈물처럼 감정들이 솟구쳤다. 이내 그의 손끝에서 하나의 이미지가 튀어올랐다. ‘물(Water)’이었다. 2012년도의 일이었고, 그가 새롭게 발견한 물에 대한 각성은 ‘워터 스케이프(Waterscape)’ 시리즈로 표출됐다.

 

“당시에 물이 저에게 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은 제게 다시 저만의 파동 에너지(리듬)로 숨 쉬게 해 주었어요.”

 

작가는 다시 붓을 잡았고, 삶의 의지를 회복했다. 그에게 물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소생이었다. “제게 물은 단순한 예술의 소재가 아니라 생의 본질에 가까운 존재로 다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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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애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울림 전시장 전경. 아트스페이스 울림 제공

 

 

그의 작업에서 빛과 흐름은 작업의 서사를 이끄는 요소들이다. 일반적으로 미술에서 중요한 요소인 색이나 구성체는 그에게 빛과 흐름을 설명하는 구성물에 불과하다. 그는 사물을 색이 아닌 파장으로 인식한다. “동양화 전공자로서 제 안에 이미 비물질적인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물질보다 비물질, 색보다 빛, 구체적인 형상보다 율동과 흐름에 더 민감했던 것 같아요.”

 

물로 형상을 조성하기 이전에 그림의 바탕체에 도포하는 푸른색 또한 그에게는 빛의 굴절에 해당된다. 내면의 빛이 굴절한 결과 나타난 것이 ‘푸른색’이라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그가 “푸른색도 물처럼 나에게도 왔다”고 했다. “각자의 내면에 빛의 굴절처럼 반사되어 나오는 색이 제게는 푸른색이었어요.”

 

분사하는 물은 살아 움직인다. 생물은 자발성과 주체성을 발현하기 마련이고, 작가의 의지를 개입시키더라도 부지불식간에 생물이 가진 주체성은 끼어든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물의 속성은 그의 작업에서 긴장감을 부추기는 요소다. 그러나 물의 의지를 어느 정도는 다스릴 수 있어야 하는데, 이때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보다 직관이다. 직관과 직관이 만나야 제대로 된 승부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물을 분사하는 거리, 속도, 판단 등을 직관에 따라 결정한다. 그럴 경우 물의 속성과 그의 창작의지가 합일되는 지점이 생겨난다.


그의 작업에서 특히 중요한 지점은 작업이 끝나는 시점이다. 언제 손을 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작품의 균형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멈추는 타이밍을 놓치면, 물감이 전부 씻겨 내려가 버립니다.”

 

그의 작업은 물을 분사해 표면을 지운다는 작업방식에서 독특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작업 시스템도 그에 못지않게 독자적이다. 분사하는 물을 제어하는 것이 벅찬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방법론은 화판을 회전시키며 형상을 쌓아가는 것이다. 이때 작가의 몸과 물의 흐름과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로 표면에 흔적이 남게 된다.

 

“화판을 바닥에 눕히거나 세우거나, 휠로 돌리는 방법으로 몸과 화판을 함께 움직이며 작업합니다. 그것은 곧 몸의 궤적이자 시간의 궤적이기도 하죠.” 작업과정에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유기적인 흐름과 우연적인 상황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는 그런 현상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화면에 반영한다.

 

그의 물 드로잉인 ‘워터 스케이프’ 시리즈는 ‘물결’, ‘물풀’, ‘물꽃’ 등의 세 단계로 진화했다. ‘물결’은 물의 파동과 흐름을 형상화한 수평, ‘물풀’은 생명의 성장을 형상화한 수직, ‘물꽃’은 꽃처럼 피어나는 존재를 형상화한 원으로 표현됐다. “생명의 순환과 에너지의 리듬을 ‘흐르다-자라다-피어나다’라는 개념으로 확장해 갔어요. 구체적인 재현보다는 이미지의 방향성, 움직임, 속도 같은 것들이 중요했죠.”

 

그의 ‘이수관지’는 매체적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공판화, 디지털 영상, 인터랙티브 미디어, 오브제 작품 등 표현방식에서 제한을 두지 않는다. “저는 작업을 통해 특별한 감정을 전달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것보다는 관람객이 제 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마주하고, 나가서 자신을 넘어선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좀 더 근원적인 형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이번 전시에 소개되고 있는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인 ‘워터오디세이:물꽃 벼리’는 작가의 물 드로잉 회화 작업 과정과 행위를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접목을 통해 관객에게 간접적인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이는 특히 관람객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으로 경험하는 공감각적 작품으로, 관람객의 손짓으로 씨알이 형태를 갖춰가고, 관람객은 그 물꽃 씨알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고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역동적인 생명의 여정을 탐험하게 된다.
 

전시는 6월 1일까지.

 

 

황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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