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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리움 모리 기획전시 [시,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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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MORI Collection
<시, 그리고>

2022.12.24.-2023.03.19.

 

 카롤링거 시대의 저술가들은 문학을 시각예술보다 더 높이 평가했다. 회화는 시각적 형식으로 제한되어 있는 반면, 문학은 ‘시각이나 청각 혹은 미각이나 후각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문학이 주는 즐거움은 더욱 완전하고 유용하며, 그 지속력이 더욱 강렬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 이르는 예술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지금, 문학과 시각예술은 되려 영향을 주고받는다. 시각예술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개개인의 정서를 위로하는 심상부터 동시대의 사회적 동향까지 담아내고 있다. 아트리움 모리의 두 번째 소장전 <시, 그리고>는 3인의 시인과 5인의 작가와 함께하며 시와 회화 간의 상호적인 에너지를 관람객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작가 전준엽(b.1953)의 작품 <고래사냥>은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으로 부터 영향을 받았다. 작가는 윤동주의 시에서 등장하는 빛이 미래와 희망을 상징한다는 점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나 자신과 우주의 문제를 연결 짓는 작업으로 이어간다. 별빛이 수놓아진 밤하늘과 넘실대는 파도를 배경으로 관람객을 향해 미소 짓는 고래와 그 모든 것을 마주하고 있는 화면 속 인물의 모습은 윤동주의 시에서 ‘별’이 상징하는 순수한 꿈과 이상, 희망과 같은 긍정의 심상을 화면 전면에 드러낸다.

 

반면 작가 차발랄라 셀프(Tschabalala Self, b.1990)의 작품 속 인물은 뉴욕의 할렘가에서 출생해 흑인 여성으로 살아온 작가 본인의 정체성 이슈를 내포한다. 다양한 매체의 콜라주로 표현된 작품 속 여성의 신체는 전준엽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같이 서정적인 상징성을 지닌다기보다 시대의 사회상을 내포하며 흑인 여성의 신체에 관한 내러티브를 생성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컬러감으로 이루어진 작품 특유의 발랄함 뒤에 숨겨진 사회의 투쟁과 억압을 은유한다.

 

 차발랄라 셀프의 작업이 신체의 형태를 통해 정체성 이슈를 이야기한다면 작가 이건용(b.1942)은 자력적인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예술과 몸의 세계를 연결 짓고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는 실험을 이어간다.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인 작가는 캔버스를 등지거나 측면에 둔 채 붓에 물감을 묻혀 팔의 길이만큼 표현되는 신체 드로잉으로 스스로 설정한 신체의 제약을 통해 그의 행위 자체를 시각화한다.

 

 김근태 작가(b.1953)는 회화의 물성에 대한 깊은 모색으로 주목받는 단색화 화가이다. 경주 사찰과 유적을 여행하며 석탑, 불상 등의 질감과 촉감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유화물감에 돌가루(석분)를 섞어 독자적인 매체를 탄생시킨 작가의 작업은 재료의 물성을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묵직한 사색의 화면으로 완성된다. 

 

 김근태 작가의 작품이 물성으로부터의 사색을 견인한다면, 찰스 파지노(Charles Fazzino, b.1955)의 작업은 넘쳐나는 디테일로 비롯되는 화려함과 특유의 유쾌함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느 하나 뒤처지지 않을 만큼 선명하게 각자의 존재를 뽐내는 작품 속 다채로운 풍경들은 작가특유의 색채와 표현기법을 통해 넘실대는 에너지와 이야기를 내포한다. 그의 예술은 다름 아닌 우리가 존재하는 도시와 일상, 즉 사람에 대한 깊고 열렬한 사랑 그 자체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시인 3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4권의 고서가 함께한다. 박목월(1915-1978), 변영노(1897-1961), 정지용(1902-1950)의 시집을 전시장에서 실물로 만나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 참여작가 전준엽은 작품의 정서적 세계관을 형성함에 있어 윤동주(1917-1945)의 시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정지용을 동경하였다. 후에 정지용은 윤동주의 유고시집 서문을 집필하게 된다.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 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일제강점기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 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

-정지용 시인의 서문 중

 

이처럼 이번 전시는 세대를 따라, 그리고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시와 회화 간의 에너지를 담아낸다. 시, 그리고 회화라는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로부터 비롯되어 상생하고 충돌하는 각각의 의미를 고스란히 느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태병은

 

 

복합문화공간

ARTRIUM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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