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ㅣ[갤러리에서]20년 동안 작품 속에 '집'을 그린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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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가진 상징성과 무게감을 통해 삶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김결수 작가가 오는 8월13일까지 경북 성주 '아트리움 모리'에서 '노동과 효과성(Labor & Effectiveness)'을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김 작가는 현대미술가로 입문한 후 지금껏 '노동과 효과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천착해 왔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회화와 설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김 작가의 작업은 '예술은 무익한 노동일 뿐'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부수어버리는 일종의 저항이자 철학으로 평가받는다. 김 작가는 "대학을 다니던 즈음 음주운전 차량에 의해 무참히 박살 나 버린 포장마차를 보면서 노동과 그 효과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포장마차와 가련한 여주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비록 하찮은 노동일지라도 숭고하고 위대한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 중인 영상이 관람객을 반긴다. 영상은 대지 위에서 집의 형상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모습을 반복하며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상 막판에 천이 집을 감싸는 장면은 '인간의 죽음' '삶의 끝이자 시작'을 의미한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집이 등장한 지도 어언 20년이 넘었다. 김 작가는 "드로잉의 문제가 아니다. 집이야말로 노동의 요소들과 연결돼 있다. 집과 관련한 작품에 그동안 천착해왔던 것은 집에 노동에 대한 의미가 가장 크게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아파트 거주가 주축을 이루고 장례식장 위주의 장례문화가 발전했지만, 과거 우리 가족들은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삶에 대한 포괄적 모습을 다루는데 '집'이라는 소재가 가장 상징적으로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가 표현한 집들은 거친 종이의 표면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얼핏 보면 스티로폼으로 보일 정도로 입체감이 강한 종이 위에 아크릴과 숯가루를 혼합해 만든 안료로 집의 형태를 표현했다. 일반적은 검은색과 달리 안료는 주변의 빛을 흡수하며 그 중후함과 깊이를 더한다. 작품 속 여백에도 눈길이 간다. 작품의 회화성에 충실하면서도 재료의 질감 등을 낱낱이 보여주려는 작가만의 의도다.
김 작가는 "작가가 생각하는 보편성을 전달하려 할 때 드러난 여백은 회화적 요소를 광범위하게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인위적 혹은 그대로 둔 형태의 여백들이 작가의 막연할 수도 있는 철학을 보여주는데 도움이 되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 작가는 평면 작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시장 내에 설치한 오브제에도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단지 페인팅이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인생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 오브제에 집중한 이유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녹슨 재봉틀 3개와 3개의 바퀴가 달린 철제 박스가 자리해 있다. 이 오브제들은 단지 오래된 물건이 아닌 화재를 겪은 집터와 공장 등 고단한 삶의 터전에서 한때 제 기능을 했던 것들이다. 철제 박스의 경우 일부러 3개의 바퀴만 설치해 삶의 불완전성을 드러냈다.
전시장 밖에 설치된 대형 사각 큐브는 노동의 의미에 대한 작가의 집착과 애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몇 일을 고단하게 작업한 끝에 입방체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논 두 마지기(약 1천300㎡)에서 수확한 볏짚을 켜켜이 쌓아 올려 만들었다. 큐브 속에서는 볍씨와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나면서 관람객들에게 노동과 예술의 본질을 되묻는다.
김결수 작가는 "단순한 노동의 반복만으로 두드러진 시각적 효과를 주기에는 어렵다. 누군가를 의식한 것이 아닌 그저 노동의 흔적으로 남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노동의 흔적이 예술가의 여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