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리움 모리] 호정 개인전
호정 개인전 《날, 그리고 날》
따스한 바람의 기운이 완연한 5월, 아트리움 모리는 자연을 소재로 생의 장면을 담아내는 작가 호정의 개인전 《날, 그리고 날》을 개최한다. 작가는 비가시적 존재인 바람을 통해 인식되는 자연의 흔적을 시각화한다.
삶 너머의 세계를 담고 있는 예술이 시작되는 지점은 순간, 압축된 찰나이다. 가장 지쳐있던 순간 무심히 바라본 장면으로부터 작가는 생(生)을 발견했다. 깡마른 대나무가 몸을 세차게 흔들며 만들어내는 마찰음, 타의로 인해 파르르 흔들리는 가지와 목적지를 잃은 채 정신없이 나뒹굴다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듯 소리 없이 바닥에 안착하는 이파리.
빛과, 물과, 바람으로부터 탄생하고, 자라나는 덩치로 생명력을 증명하다 이내 흔들리고 떨어지며, 정처 없이 떠도는 자연의 모든 과정에 생의 순환이 담겨있었다. 작가 호정에게 자연은 또 하나의 삶, 생을 대변하는 소재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지휘하는 것은 바람이었기에 작가는 그것을 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호정의 예술에 바람이 스며들었다. 작가의 작업은 인상을 담아낸다. 바람을 담기 위한 시도는 나무 패널 위에 콜라주한 부조 형태의 한지 작업으로 시작되었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더욱 다양한 소재와 설치 방식으로 그 흔적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작업의 소재로 한복의 옷감인 노방, 두께와 질감이 모두 다른 한지 등 다양한 재료가 등장하는 것은 대학시절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던 작가의 환경으로부터 비롯됐다. 온갖 소재의 패브릭을 만지고 자르며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 내는 경험 그 자체가 주었던 만족을 발판 삼아 한지를 찢고, 노방 위에 인두로 그림을 그림으로써 작품을 탄생시킨다. 물감과 붓으로 평면 안에 제3의 세계를 창조하는 여타의 작품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행보이다. 호정의 세계는 캔버스 넘어 닿을 수 없는 어떤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관객의 옷깃에 스칠 만큼 코앞에, 바로 여기 위치한다. 작가의 예술은 지금 우리의 날, 생 그 자체이기에.
생을 다한 듯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 쓸려 버려지거나 바람에 날려가는 그것들이 작가는 애달팠다. 바람의 결말로 존재하는 그것들이 무용하게 나뒹구는 모습이 인생의 마지막 장면과 다를 바 없었다. 절실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피어나는 순간은 아름답게 여겨지면서, 쓸모없음으로 결론 나는 이 과정이 아프게도 우리의 삶과 닮아있어서. 작가는 그 애달픈 잎들을 손수 주워 모으는 듯한 마음으로 한지를 찢고, 노방을 자른다.
호정 개인전 《날, 그리고 날》을 통해 관객은 바람을 인식한다. 바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으로 인해 흔들리고 버려지며 탄생하는 순환의 과정을 인식하고, 무가치한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인식한다. 작가의 예술은 따스한 바람이 되어 날, 그리고 날, 그다음에도 존재하는 우리의 모든 날들을 보듬어 감싼다.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태병은